매화, 寒士(한사)를 만나다.「春梅(춘매)」

by 오색령 posted Mar 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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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 찾아 3


부족한 者(것)이 寒士(한사)를 만나다.「春梅(춘매)」




「매화」학 명 : Prunus mume Sieb. & Zucc


꽃을 매화, 열매를 매실(梅實)이라고 한다.
나무껍질은 노란빛을 띤 흰색, 초록빛을 띤 흰색, 붉은색 등이며 작은가지는 잔털이 조금 나거나 없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잎의 양면에 털이 나며 잎자루에 선이 있다.
꽃은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붉은색을 띤 흰빛이며 향기가 난다. 꽃받침은  5개, 꽃잎은 여러 장이며 넓은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다. 열매는 핵과로 녹색인데 7월에 노란색으로 익고 신맛이 강하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매화(for. alba), 붉은색 꽃이 피는 것을 홍매화, 푸른빛을 띤 꽃이 피는 것을 청매화 라고도 부르며 꽃잎이 많은 종류 가운데 흰 꽃이 피는 것을 만첩흰매화(For. albaplena), 붉은 꽃이 피는 것을 만첩홍매화 (For. alphandii)라고 한다.
5~6월 덜 익은 열매를 채취하여 약용이나 식용으로 사용한다.



매화’는 추운 겨울, 눈이 날리는 시기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이다. 예로부터 사군자 중의 첫 번째(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연유로 첫 번째로 사군자에서 꼽는다.)로 놓고 있다.
그 찬 바람 부는 시기에 꽃을 피우고도 꿋꿋이 견디어내는 모습을 우리 조상들은 가난하지만 기품이 있고 자신의 도리와 격을 지킬 줄 아는 선비와 견주어 寒士(한사)라고 칭하였다.

조금 더 자세히 한사와 선비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보면, 선비는 한자어의 士(사)와 같은 뜻이다. 우리말의 '선비'는 몽골어에 어원을 둔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뜻으로 한자의 ‘사’는 仕(사 : 벼슬하다)와 동일 시 되어, 일정한 지식과 기능을 갖고 어떤 직분을 맡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거나, 事(사 : 일하다 · 섬기다)로서 낮은 지위에서 일을 맡는 기능적 성격으로 보기도 했다. 선비는 주나라 시대(周代)의 봉건사회에서 하급관리에 속하는 계급이었으나, 춘추시대부터 선비(사)의 인격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사’는 신분적 의미에서 대부와 결합하여 ‘사대부’(士大夫)라 일컬어지며, 인격적 의미에서 군자와 결합시켜 ‘사군자’(士君子)로 이르게 된다.
‘儒’(유)도 선비와 같은 뜻으로 유교이념을 담당한 인격을 의미한다.
한편 선비는 독서로 학문을 연마하여 관료가 될 수 있는 신분으로, 농 ·· 상의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서민들과 병칭되어 사민(四民 : 士 ··· 商)의 첫머리에 놓였다.

그런 점에서 살펴보면 결국 선비란 인격적으로 유교적 습관이 몸에 밴 생활을 하여야 하며, 벼슬을 하지 못하여 가난한 생활을 할지라도 품위를 지켜야 마땅하고, 언제든 학문을 배우는데 부지런하여 하시라도 나라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마땅히 벼슬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충과 효를 마땅히 지키는데 힘 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동시에 지고 살았던 부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살펴보면 서늘한 기품이 서린 선비에 걸맞은 매화의 모습은 화사하게 피어난 따뜻한 봄날의 매화는 아니다.
추운 겨울 섣달 찬바람과 눈보라 속에 외롭게 피어난 철 이른 매화가 선비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겠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가난한 선비라 ‘寒士’(한사)라 하기 보다는 가난할지언정 기품과 지조를 지킬 줄 아는 정직한 선비를 일러 ‘한사’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한 번 이 사진을 보자.

어디 ‘찰 한’(寒)자를 쓰는 선비의 느낌이 드는가.

전혀 아니다. 선비의 기품이라기보다 무언가 잘 단장한 여인의 모습이요, 사대부 중에서도 높은 벼슬아치가 관복을 한껏 차려입고 행차 하는 모습이 아닌가.
그 사대부가 벼슬을 하되 자신의 품격을 지키고 그릇됨을 살필 줄 안다면 그는 선비다. 하지만 그릇의 크기는 모르고 탐욕스러운 허상을 쫓아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그건 아니 할 말로 잡-놈보다 못한 상잡-놈 아니겠는가.

그런 탐관오리가 세상에 득세하면 나라를 망친다. 자신의 가문을 망친다면 한 집안이나 망치지만 나라를 망치면 모든 어진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되는 이치 아닌가.

어진 이는 어느 곳에 꼭 나서야 할 때도 늘 자리를 살펴 앉았고 행하였다. 아직은 차가운 날씨지만 어렵사리 만나지는 한 송이 매화를 만나기 위하여 걸음품을 파는 일을 즐겼으며, 외려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꽃이라면 사양할 줄 알았던 것이다.
매화향기 좋다 하지만 그도 한 때일 뿐이다. 자리를 살펴 앉고 행하지 않으면 결국 ‘陋’(누)가된다. ‘陋’(누)란 무엇인가. 견문이 적고 작은 걸 말함이다. 스스로 행하고 찾음이 게으름도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지만 그릇의 크기에 맞추어 자리를 잡지 못함도 함께하는 주변인(동무)까지 욕되게 하는 일 아니겠는가.

가람 이형기 시인은 ‘매화’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매화


외로 던져 두어 미미한 숨을 쉬고
따뜻한 봄날 돌아오길 기다리고
음음한 눈얼음 속에 잠을 자던 그 매화

손에 이아치고 바람으로 시달리다
곧고 급한 성결 그 애를 못 삭이고
맺혔던 봉오리 하나 피도 못한 그 매화

다가오는 추위 천지를 다 얼려도
찾아드는 볕은 방으로 하나 차다
어느 뉘(世) 다시 보오리 자취 잃은 그 매화

-가람 이병기 (가람 시조집 1939 문장사 간)




차라리 때가 아니어서 피지 못하면 그로써 명예롭다 할 것이다.
가람의 시에서 ‘어느 뉘(세상) 다시’ 못 보면 아쉬운 건 보내고 만 이의 몫이다. 떠나야 한 이의 아픔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매화를 만나다.


눈발 날리는
아직은 섣달 스무나흘
혹여 날 반겨 피어줄까
찾아간 보타전 뒤
얼음새꽃 정겹고

보타전(寶陀殿) 앞
연지(蓮池)가
매화 향기 넘치니
오랜 기다림 끝
그토록 아리게 하던
흔적 하나 찾은 듯 일시에
가슴이 환하게 열렸다.

냉담하기만 하던 빗장을 벗기고
일정한 규칙의 텍스트를 암기하던 너처럼
욕망 가득한 적극적 상상의 물결 위
전설을 꿈꾸던 이들이 이야기 하였을
빛으로 가득 찬 뜨거운
영원의 세계로 가는 문
네가 먼저 열었을 때
그때도 그랬을까.

-정덕수 2004. 3. 3




세상은 기다림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 기다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약한 바 없으니 그리 아플 이유도 없다만, 그래도 막연한 바램 이었던 일이 소원 하나 성취한 듯 이루어졌을 때의 감동은 실로 살맛나게 한다.

지난 해 불에 타 흔적만 남은 절집이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 보타전과 홍련암은 화마를 피하였고, 연지도 다행히 불길이 미치지 않아 꽃을 만나러 갔다.



민둥산이 되어버린 보타전 뒤 산자락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래도 철만나 피어난 들꽃이 있어 얼마간의 위안을 얻었다.

내 음치만 아니라면 거기서 한 자락 그 감격의 마음을 노래로라도 불렀으련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