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dramafamily.com/wwwb/CrazyWWWBoard.cgi?db=board5&mode=read&num=6&page=1&ftype=6&fval=&backdepth=1
1970년대 중반 김희갑, 황정순씨가 주연이었던 "꽃피는 팔도강산"의 작가 윤혁민 선생님의 글입니다.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라서... 허락도 받지 않고 퍼왔습니다.
<빌스>.
무슨말인가 할것이다.
그러나 안산 예술인 아파트에 와서
날 안다는 사람한테 물어보라.
"아 그 똥차 말씀입니까? 요즘 안보이던데요?"
이러면서 반색을 할것이다.
그렇다.
<빌스>는 바로 내 똥차 이름이다.
이쯤되면 썩어도 준치라고 무슨 외제차의 퇴물쯤으로
지레 짐작을 하는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공식명칭은 <아시아 코취 15인승 미니뻐스>이다.
그게 왜 <빌스>가 되었는가? 사연이 있다.
70년말에 <정말 더럽구 치사해서>
방송잡가(작가가 아니다)노릇을 때려치겠다고
쥐뿔도 없는 주제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미리 예정 되었던 운명의 순서에 따라 망해버렸다.
건진것이 있다면
이땅에서 최초로
비디오푸로덕션을 시작(문공부등록 1호)해서
<비디오 단군>소리를 들었다는것과
흑백 TV시절에
방송국보다도 앞서서 칼라푸로그램을 만들었다는것뿐
나는 자기자본의 2천푸로가 넘는 부채와 함께
바닥을 모르는 심연속으로 갈아 앉아 버렸다.
당시 내 사업장은
서울의 현 고속터미널 옆의 꽃상가(인창삘딩) 였는데
망해버린 사업장을 그리워할 기업주가 어디 있는가?
의도적으로 그 근처에는 가지 않는걸로 결심을 했고
그러다보니 시골엘 갈일이 있어도 애써 고속뻐스 를 외면하고
기차나 시외뻐스를 이용하군 했다.
그러다가 1년만인가?
나는 술김에 그 근처를 지나면서
예가 어디쯤인가 차창밖을 내다보다가
그만 숨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현장녹화를 위해서
월부로 끌어내어 아직 다 갚지도 못한 그차가
주유소 한옆의 허접스레기 속에 버려져 있는것이 아닌가?
채권자가 끌어갔으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큰 골치덩이어서
그대로 방치를 해둔것이었다.
기적은 또 일어났다.
동생을 데려다가 시동을 걸어 봤더니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그 험상한 몰골이 기운차게 부르릉거리면서
문어처럼 시컴언 매연을 토하는것이 아닌가?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끼면서
나는 그 차를 정비업소로 끌고 갔다.
그지음 나는
내 평생에 두번다시 가질수 없는
장위동 고개턱의 90평 저택(?)까지 명도 당하고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가 셋방살이를 시작했을 때인데
거기까지 추적해오는 채권자들의 등쌀에
거의 전화 노이로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차의 의자를 들어내고
간이식으로 침대와 책상을 만들었다.
필요 한 책들을 옮겨놓고
등산용품과 낚시도구까지 갗추어 놓으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는 이동식 주거공간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차를 낚시터나 공동묘지등
한적한 그늘로 끌고가
거의 그속에서 기거를 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고
심심하면 붕어탕 끓여 술 마시고..
빚쟁이 전화가 걸려오나
귀찮은 손님이 찾아 오나
그 속은 그야말로 나의 행복한 천국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면허증이 없었다.
자연 교통순경만 봐도 비일빌 하게 되었고
고속도로에 들어가면 아무리 속력을 내봤자
역시 7.80에서 비일빌
...게다가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이 나서 비일빌..
어느틈에 차 이름도 자연스럽게 자타가 공인하는
<빌스>가 되어 버렸다.
"어어? 봉고차두 아니구 이게 무슨 차지?"
"예 빌스라고 합니다"
"빌스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어느 회사에서 나온거죠?"
"혹시 벤스라는 차를 아시는지요?
그 회사에서 벤스 만들다가 남은 자투리로
이 차를 만들었다던가요? 그래서 빌스라고 한다는데 사실은 저
도 잘 모릅니다"
" ? "
나는 이 <빌스>안에서
다시 지겨운 작가생활을 시작했고
작가가 가까히 안 보이면 불안 하다는
K 국장의 간청(?)을 받아들여
여의도 윤중제의
1970년대 중반 김희갑, 황정순씨가 주연이었던 "꽃피는 팔도강산"의 작가 윤혁민 선생님의 글입니다.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라서... 허락도 받지 않고 퍼왔습니다.
<빌스>.
무슨말인가 할것이다.
그러나 안산 예술인 아파트에 와서
날 안다는 사람한테 물어보라.
"아 그 똥차 말씀입니까? 요즘 안보이던데요?"
이러면서 반색을 할것이다.
그렇다.
<빌스>는 바로 내 똥차 이름이다.
이쯤되면 썩어도 준치라고 무슨 외제차의 퇴물쯤으로
지레 짐작을 하는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공식명칭은 <아시아 코취 15인승 미니뻐스>이다.
그게 왜 <빌스>가 되었는가? 사연이 있다.
70년말에 <정말 더럽구 치사해서>
방송잡가(작가가 아니다)노릇을 때려치겠다고
쥐뿔도 없는 주제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미리 예정 되었던 운명의 순서에 따라 망해버렸다.
건진것이 있다면
이땅에서 최초로
비디오푸로덕션을 시작(문공부등록 1호)해서
<비디오 단군>소리를 들었다는것과
흑백 TV시절에
방송국보다도 앞서서 칼라푸로그램을 만들었다는것뿐
나는 자기자본의 2천푸로가 넘는 부채와 함께
바닥을 모르는 심연속으로 갈아 앉아 버렸다.
당시 내 사업장은
서울의 현 고속터미널 옆의 꽃상가(인창삘딩) 였는데
망해버린 사업장을 그리워할 기업주가 어디 있는가?
의도적으로 그 근처에는 가지 않는걸로 결심을 했고
그러다보니 시골엘 갈일이 있어도 애써 고속뻐스 를 외면하고
기차나 시외뻐스를 이용하군 했다.
그러다가 1년만인가?
나는 술김에 그 근처를 지나면서
예가 어디쯤인가 차창밖을 내다보다가
그만 숨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현장녹화를 위해서
월부로 끌어내어 아직 다 갚지도 못한 그차가
주유소 한옆의 허접스레기 속에 버려져 있는것이 아닌가?
채권자가 끌어갔으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큰 골치덩이어서
그대로 방치를 해둔것이었다.
기적은 또 일어났다.
동생을 데려다가 시동을 걸어 봤더니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그 험상한 몰골이 기운차게 부르릉거리면서
문어처럼 시컴언 매연을 토하는것이 아닌가?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느끼면서
나는 그 차를 정비업소로 끌고 갔다.
그지음 나는
내 평생에 두번다시 가질수 없는
장위동 고개턱의 90평 저택(?)까지 명도 당하고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가 셋방살이를 시작했을 때인데
거기까지 추적해오는 채권자들의 등쌀에
거의 전화 노이로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차의 의자를 들어내고
간이식으로 침대와 책상을 만들었다.
필요 한 책들을 옮겨놓고
등산용품과 낚시도구까지 갗추어 놓으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는 이동식 주거공간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차를 낚시터나 공동묘지등
한적한 그늘로 끌고가
거의 그속에서 기거를 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고
심심하면 붕어탕 끓여 술 마시고..
빚쟁이 전화가 걸려오나
귀찮은 손님이 찾아 오나
그 속은 그야말로 나의 행복한 천국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면허증이 없었다.
자연 교통순경만 봐도 비일빌 하게 되었고
고속도로에 들어가면 아무리 속력을 내봤자
역시 7.80에서 비일빌
...게다가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이 나서 비일빌..
어느틈에 차 이름도 자연스럽게 자타가 공인하는
<빌스>가 되어 버렸다.
"어어? 봉고차두 아니구 이게 무슨 차지?"
"예 빌스라고 합니다"
"빌스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어느 회사에서 나온거죠?"
"혹시 벤스라는 차를 아시는지요?
그 회사에서 벤스 만들다가 남은 자투리로
이 차를 만들었다던가요? 그래서 빌스라고 한다는데 사실은 저
도 잘 모릅니다"
" ? "
나는 이 <빌스>안에서
다시 지겨운 작가생활을 시작했고
작가가 가까히 안 보이면 불안 하다는
K 국장의 간청(?)을 받아들여
여의도 윤중제의
정말로 세상사는 야그입니다.
넘 재미있는데 후속 편은 없나요.
딴데서 찾지말고 윤혁민씨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면 대박 터지겠습니다.